오늘(2021년 12월 20일)은 김영삼(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前 대통령의 탄생 94년이 되는 날이어서 그분께서 생존 중이시면 오늘(2021년 12월 20일)로서 94세 생신이 되시는 날입니다.
또한 1987년, 1992년, 1997년, 2002년, 2007년, 2012년 등 6번의 해에는 이 시기에 대통령선거들이 끝난 후 대통령당선자들은 만천하를 얻어서 행복하시고 그 만천하는 추후 5년동안 취임할 신임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2012년 12월 19일 당시 치른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前 대통령의 제18대 대통령 임기기간은 원래 2013년 2월 25일 ~ 2018년 2월 24일까지였으나 2017년 3월 9일에 탄핵되어 다음날인 2017년 3월 10일에 사임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원래 2017년 12월 20일에 치르었어야 할 제19대 대통령선거를 2017년 5월 9일로 앞당겨져서 치름으로서 6번에 걸쳐서 치른 12월 중순의 대통령선거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 민주화시대 대통령들의 대통령선거 출마 당시 재수(?)여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와의 연관성, 민주화시대 최초의 대통령 노태우 前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행운아이던 이유, 끝내 민주화시대 대통령의 꿈을 접은 김종필님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대통령 취임 전 소속 당적여부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대통령 취임 전 소속 당적여부에 대한 개관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모두 예외없이 대통령에 취임 하기 전에 소속 당적들이 있었습니다.
독재시대에 집권하던 이전의 이승만 ~ 전두환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중 취임 하기 전에 소속 당적이 없던 대통령들은 군인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집권하던 박정희, 전두환 등 2명) 및 외교관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하시다가 박정희 前 대통령의 작고로 집권하던 최규하 등 1명으로서 총 3명인데 이분들은 모두 대통령 취임 전과 퇴임 후 국회의원을 하신 적도 없습니다.
또한 1987년 6월 29일 당시 있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던 6·29선언 당시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자 양대산맥의 대통령들은 오래전에 작고하셨고 윤보선과 최규하 등 쿠데타로 실각하시던 대통령들만 생존하여 계셨습니다.
노태우 이후 모든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국민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셨는 데 이분들 모두 대통령 퇴임과 함께 소속 당적에서 탈당 후 다른 정당들에도 입당하시지는 않았는 데 대통령 취임 전 소속 당적이 있었가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들(4명)>대통령 취임 전 야당 당적만 두고 여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우리나라 대통령들(2명)>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만 두고 야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우리나라 대통령(1명) 순으로 많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만 두고 야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우리나라 대통령
노태우 前 대통령이 유일하게 민주화시대에서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만 두고 야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대통령입니다.
12·12사태 당시 전두환 前 대통령에 이어 2인자로서 해당 쿠데타에 가담한 노태우 前 대통령은 전두환 정부에서 치른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입니다.
만약 당시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내지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단일화하여 1명만 출마하였다면 제13대 대통령(1988년 2월 25일 ~ 1993년 2월 24일)은 그분이 하였는 데 낙선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야당 총재의 길을 걷다가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재도전을 하였을지 정계은퇴를 하였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서 노태우 前 대통령의 생애에서 야당은 물론 국회의석수 2위 이하의 정당 당적에 대한 경험도 한 적이 없는 그분의 생애에서는 정치인으로서 여당과 제1당의 당적만 존재하였는 데 이에 대하여 야당 및 국회의석수 2위 이하의 정당 당적 보유는 권력을 소유하는 데 있어서 춥고 굶주린 사항이므로 작고 당시에도 해당 경험이 없이 하늘나라로 가던 것을 전혀 아쉬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태우 前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이 유일한 대통령으로서의 기록은 대기록으로서 추후 제2의 노태우 前 대통령이 나와서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만 두고 야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대통령은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을 전망인데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아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대신 당선되었다면 그 기록이 한번 더 나올뻔 하였지만 석패하여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이에 해당하는 대통령들이 많은 데 여당 당적과 여당 당적을 모두 보유하던 경험을 하던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하면서 이렇게 될수 밖에 없어서 이던 것입니다.
첫째 김영삼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습니다.
흔히 김영삼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정치인생활을 사실 당시 평생 야당 당적만 가지다가 3당 합당 당시 여당이 되어 1993년 2월 25일 당시 제14대 대통령(1993년 2월 25일 ~ 1998년 2월 24일)에 취임하기 전 3당 합당을 한 1990년 1월 22일 ~ 1993년 2월 24일까지 3년 1개월 2일 동안만 여당 당적을 가지신 것으로 잘못 압니다.
김영삼 前 대통령은 제3대 국회의원선거(1954년 5월 20일) 당시 경상남도 통영군 을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자유당 자체가 당시 여당으로 여당 당적으로 정계 입문을 하시는 데(사사오입 개헌 당시 탈당 후 1955년에 창당한 민주당에 입당) 이후 대통령 당선시까지 39년 동안 그분의 당적은 자유당, 민주당(1955년), 민정당, 신민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민주자유당 등 7개 였는 데 여당 = 자유당, 민주자유당 등 2개 정당이었고 야당 = 민주당(1955년), 민정당, 신민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등 5개 정당이었는 데 대통령 재임 중이던 1995년 12월 6일에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명한 이후 치른 제15대 국회의원선거(1996년 4월 11일) 당시 소속 정당 신한국당은 기존의 민주자유당 처럼 제1당이자 여당이어서 소속 정당이던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이 모두 제1당이자 여당이었습니다.
둘째 노무현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제13대 국회의원선거(1988년 4월 26일) 당시 부산직할시 동구 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 입문을 하시는 데 이후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 출마하여 당선되기까지 14년동안 여당과 야당을 모두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그분의 당적은 통일민주당, 민주당(1990년), 민주당(1991년), 통합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 6개 였는 데 야당 = 통일민주당, 민주당(1990년), 민주당(1991년), 통합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등 4개 정당이었고 야당 + 여당(해당 당적 보유중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경) = 새정치국민회의 1개 정당이었고 여당 = 새천년민주당 1개 정당이었는 데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3년 11월 11일에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창당으로 해당 정당이 제3당이자 여당이었지만 제17대 대통령선거(2004년 4월 15일) 당시 제1당이자 여당이 된후 2007년 8월 5일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개편한 이후에도 그 지위가 대통령퇴임하기 8일전인 2008년 2월 17일까지 지속됩니다.
셋째 이명박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前 대통령은 제13대 국회의원선거(1992년 3월 24일) 당시 민주자유당 전국구 25번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 입문을 하시는 데 이후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 출마하여 당선되기까지 15년동안 여당과 야당을 모두 하였습니다.
이때 까지 그분의 당적은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3개 정당이었고 여당 = 민주자유당 1개였고 여당+야당(해당 당적 보유중 여당에서 야당으로 변경) = 신한국당 1개 정당이었고 야당 = 한나라당 1개 정당이었는 데 제17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대통령 재임 중에 치른 제18대 국회의원선거(2008년 4월 9일) 당시 소속 정당 한나라당이 제1당이자 여당이 되었고 한나라당이 2012년 2월 13일에 당명을 개명하고 치른 제19대 국회의원선거(2012년 4월 11일) 당시 소속 정당 새누리당도 제1당이자 여당이 되어서 대통령 임기기간내내 소속 정당이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모두 제1당이자 여당이었습니다.
넷째 박근혜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여당 당적과 야당 당적을 모두 둔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前 대통령은 1998년 재보궐선거(1998년 4월 2일) 당시 제15대 국회의원의 공석이 되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 입문을 하시는 데 이후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 출마하여 당선되기까지 14년동안 여당과 야당을 모두 하였습니다.
이때 까지 그분의 당적은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2개 당적이었고 야당+여당(해당 당적 보유중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경) = 한나라당 1개 정당이었고 여당 = 새누리당 1개 당적이었는 데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대통령 재임 중에 치른 제19대 국회의원선거(2016년 4월 15일) 당시 소속 정당 새누리당이 제2당이자 여당이 되었는 데 2017년 2월 13일 당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명하여 제2당이자 여당이었고 대통령 임기기간내내 소속 정당이던 새누리당은 제1당이자 여당에서 제2당이자 여당이 되었고 자유한국당이 제2당이자 여당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이러한 대통령들이 대부분인데 미국 제42대 대통령(1993년 1월 20일 ~ 2001년 1월 19일) 빌 클린턴(1946년 8월 19일 ~ )을 예로 들면 민주당 당적으로 아칸소 주지사를 지낼 당시 민주당(카터)과 공화당(레이건, 부시)이 모두 집권하여 여당(민주당)과 야당(공화당)을 모두 한 적이 있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대통령 취임 전 야당 당적만 두고 여당 당적은 둔 적이 없는 우리나라 대통령들
우리나라에서 이에 해당하는 대통령들이 보수정당에 당적을 둔 대통령들은 없고 중도정당에 당적을 둔 대통령들만 존재합니다.
첫째 김대중 前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야당 당적만 두고 여당 당적은 둔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 최대 특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43년 야당정치인생활을 하였다』인데 제3대 국회의원선거(1954년 5월 20일)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당선되기 까지의 정치행적을 의미합니다.
이 43년동안 그분의 당적은 민주당(1955년), 민주당(1963년), 신민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연합당, 민주당(1991년), 새정치국민회의 등 9개 였는 데 모두 제2당이자 제1야당 당적으로만 정치인생활을 하시다가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어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였지만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제2당이자 여당 당적으로 대통령생활을 마친 후 정계은퇴하여 대통령시절을 제외하고는 야당만 하고 정치인으로서 제1당 당적을 둔 적이 없습니다.
둘째 문재인 現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 야당 당적만 두고 여당 당적은 둔 적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은 60세가 다 될때까지 정당에 입당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등의 정치를 안하시다가 제19대 국회의원선거(2012년 4월 11일) 당시 부산광역시 사상구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서도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지만 낙선합니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으로서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 하시면서 그분의 당적은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 3개 였는 데 제2당이자 제1야당 당적으로만 정치인생활을 하시다가 그분이 불출마한 제20대 국회의원선거(2016년 4월 15일) 당시 제1당이자 제1야당이 된 후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제1당이자 여당의 지위를 대통령 임기기간 내낸 유지하는 데 대통령시절을 제외하고는 야당만 하고 정치인으로서 여당 당적을 둔 적이 없습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 보수정당이던 새누리당 당적으로 대통령이 되던 박근혜 前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에도 보수정당이던 한나라당 당적이었는 데 이명박 후보 대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면 보수정당 최초로 이 기록이 나올뻔 하였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재수(?)여부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재수(?)여부에 대한 개관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낙선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이후 차기 이후 대통령선거에 재출마하는 일을 재수(?)한다고 할수 있는 데 흔히 대학교입학시험생이 하는 재수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흔히 망각하는 일이 대통령선거에서 하는 재수(?)만 연상하고 대통령선거때 각 정당들이 치르는 경선에서의 재수(?)는 연상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시대가 되어 국민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을 하시던 노태우 ~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대통령선거 경선 및 본선에서의 재수(?)여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경선까지도 재수하여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김영삼, 박근혜 등 2분의 대통령들 뿐으로서 적은 데 나머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등 5분의 대통령들은 경선에 있어서 재수를 하신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이중 본선도 재수(?) 안하고 단 1번의 대통령선거출마로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등 3분의 대통령들이고 경선은 재수(?) 안했어도 본선은 재수(?) 안하고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김대중, 문재인 등 2분의 대통령들입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재수(?)를 전혀 안하고 당선되던 우리나라 대통령들
이렇게 해서 경선과 본선 모두 1번만 치르고 바로 청와대의 주인장으로 직행하신 대통령들은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등 3분의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첫째 노태우 前 대통령은 재수(?)를 전혀 안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8년 12월 16일)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셨습니다.
둘째 노무현 前 대통령은 재수(?)를 전혀 안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셨습니다.
셋째 이명박 前 대통령은 재수(?)를 전혀 안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셨습니다.
노태우 前 대통령 = 대통령이 되기 전에 여당만 하고 야당은 안한 대통령, 노무현 前 대통령·이명박 前 대통령 = 대통령이 되기 전에 여당과 야당을 모두 한 대통령에 해당하시는 분들입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경선과 본선 모두 재수(?)를 하고서 당선되던 우리나라 대통령
김영삼 前 대통령은 경선과 본선 모두 재수(?)를 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된 우리나라의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제7대 대통령선거(1971년 4월 27일) 당시 신민당 경선후보로 출마하였다가 김대중 경선후보에 패배하여 경선 탈락 1번, 제13대 대통령선거(1988년 12월 16일)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1번 끝에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경선탈락 1번, 본선낙선 1번 끝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경선만 재수(?)를 하고 본선은 재수(?)를 한 적이 없이 당선되던 우리나라 대통령
박근혜 前 대통령은 경선과 본선 모두 재수(?)를 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된 우리나라의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로 출마하였다가 이명박 경선후보에 패배하여 경선 탈락 1번을 하다가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경선탈락 1번끝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경선은 재수(?)를 안하고 본선은 재수(?)를 하고서 당선되던 우리나라 대통령들
이렇게 해서 경선은 재수(?)를 안하고 본선은 재수(?)를 하고서 청와대의 주인장으로 직행하신 대통령들은 김대중, 문재인 등 2분의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첫째 김대중 前 대통령은 경선은 재수(?)를 안하고 본선은 재수(?)를 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7대 대통령선거(1971년 4월 27일) 당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1번, 제13대 대통령선거(1988년 12월 16일) 당시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1번,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민주당(1991년)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1번 끝에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본선낙선 3번 끝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둘째 문재인 現 대통령은 경선과 본선 모두 재수(?)를 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1번 끝에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는 데 해당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본선낙선 1번 끝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마침 이 2분의 경선은 재수(?)를 안하고 본선은 재수(?)를 하고서 청와대의 주인장으로 직행하신 대통령들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야당만 하고 여당은 안한 대통령들을 모두 차지한다는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당선될 당시의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당선될 당시의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에 대한 개관
노태우 前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한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시발점인데 이와 관련해서 이후 치르어진 우리나라의 대통령선거들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들을 살펴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시대가 개막한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이후 원내정당으로서 거대보수정당은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 힘으로 이어져 왔고 원내정당으로서 거대중도정당은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 평화민주당 → 신민주연합당 → 민주당(1991년)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 대통합민주신당 → 통합민주당 → 민주당(2008년) → 민주통합당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원내정당이 보수정당 = 공화당, 중도정당 = 민주당으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고 진보정당은 원내정당이 아니어서 입법권이 없으므로 미국에서 진보정치가 실현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에서 7건의 대통령선거를 치를때 미국대통령선거는 모두 9건을 치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및 1988년 미국대통령선거(1988년 11월 8일), 우리나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및 1996년 미국대통령선거(1996년 11월 5일)를 제외한 모든 미국대통령선거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를때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미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역대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당선될 당시의 대통령선거들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를때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에서 양국의 정치성향이 유사한 대통령선거들은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및 1988년 미국대통령선거(1988년 11월 8일), 우리나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및 1996년 미국대통령선거(1996년 11월 5일) 뿐인데 우리나라 대통령선거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 : 우리나라 민주화시대에 치르어진 최초의 대통령선거, 우리나라 제15대 대통령선거 : 한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여 민주주의의 완성) 및 미국대통령선거들은 정권유지(1988년 미국대통령선거 : 퇴임자 레이건이 후임자 부시를 당선시키면서 정권유지, 1996년 미국대통령선거 : 초선으로 당선되어 중임이 허용되던 빌 클린턴이 재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권유지)를 하였다는 데서 최대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민주정의당은 보수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1988년 미국대통령선거(1988년 11월 8일)에서는 공화당의 부시(아버지)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유사한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둘째 우리나라 제14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민주자유당은 보수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1992년 미국대통령선거(1992년 11월 3일)에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셋째 우리나라 제15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새정치국민회의는 중도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1996년 미국대통령선거(1996년 11월 5일)에서는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유사한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넷째 우리나라 제16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새천년민주당은 중도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2004년 미국대통령선거(2004년 11월 2일)에서는 공화당의 부시(아들)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는데 2000년 미국대통령선거(2000년 11월 7일)에도 동일하였습니다.
다섯째 우리나라 제17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2008년 미국대통령선거(2008년 11월 4일)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여섯째 우리나라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2012년 미국대통령선거(2012년 11월 6일)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일곱째 우리나라 제19대 대통령선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미국대통령선거입니다.
우리나라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는 데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정당이었고 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치른 2016년 미국대통령선거(2016년 11월 8일)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하여 서로 정치성향이 정반대인 양국의 원내정당들이 집권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혈맹국 사이 중 하나인 우리나라와 미국은 대통령제를 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5년 단임제 및 직접선거제인 현행 대통령제를 1987년 이후 유지해와서 우리나라민주주의역사의 축소판인 반면 미국은 대통령제의 종주국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통령의 중임제한에 대하여 첨가한 것을 제외하고 1789년 4월 30일 당시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 대통령 워싱턴이 취임한 이후 대통령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이후 미국역사의 축소판이라는 데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승만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중에서 비교적 행운아이던 노태우
•이승만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중에서 비교적 행운아이던 노태우에 대한 개관
전쟁과 불황은 인류를 해롭게 하는 대표적인 현상들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 자국에서 이 사항들을 겪는 대통령들은 불행한 편이고 이로 인하여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매우 커서 정신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첫째 대통령 재임기간 중 자국에서 전쟁을 겪는 대통령들은 불행한 편입니다.
이때 자국 영토 아닌 제3국에서 전쟁을 치르어도 이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들을 전사, 부상, 실종 되는 피해를 당하게 되므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스트레스를 매우 크게 받아서 정신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국군통수권자로서 자국이 참전하는 전쟁을 지휘하는 일은 매우 괴로운 일로서 이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해치게 되는 건강으로 폭삭 노화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둘째 대통령 재임기간 중 자국에서 불황을 겪는 대통령들은 불행한 편입니다.
이때 자국에서 지속되는 불황으로 인하여 자국민들중 실업자 및 파산자들이 급증하게 되므로 1개 국가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이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데 이에 대한 피해가 클수록 이로 인하여 정신건강을 보다 많이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자국 경제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바뀌게 되면 매우 괴로운 일로서 이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해치게 되는 건강으로 폭삭 노화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노태우(1932년 12월 4일 ~ 2021년 10월 26일) 前 대통령은 제13대 대통령(1988년 2월 25일 ~ 1993년 2월 24일)으로 재임할 당시 이 불행들의 양대산맥을 경험하지 않아서 비교적 행운아이던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전쟁을 경험하지 않는 비교적 행운아이던 노태우
그분이 대통령으로 재임할때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전임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은 집권할때 아웅산테러로 인하여 제2차 한국전쟁의 위기를 겪었고 후임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할때 강릉잠수함침투사건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지전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노태우 대통령임기기간에는 전임대통령 전두환의 집권기간처럼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위기 및 후임대통령 김영삼의 집권기간처럼 북한과의 국지전 조차 없어서 이들에 비하여 훨씬 평화로운 시대였습니다.
그분의 대통령 임기 초반이던 1988년 당시에는 자국의 수도 서울에서 서울올림픽개최하는 것을 앞두고 있어서 북한이 전쟁도발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1989년 부터 임기 말년이던 1992년까지는 북방외교를 통하여 북한의 혈맹국들과 수교하여 북한의 남침계획 자체가 실현되는 데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서였습니다.
이러한 그가 대통령임기기간 중 이룬 또 하나의 대업적은 이로 인하여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도록 해서 쇠퇴시키고 이에 따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매우 크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 김일성에게 심근경색이 발병하여 사망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자국이 참전하는 전쟁은 물론 전투도 경험하지 않은 노태우 前 대통령은 이로 인하여 특히 전사자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국군통수권자로서 스트레스받는 고통을 겪지 않던 행운의 대통령이던 것입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불황을 경험하지 않는 비교적 행운아이던 노태우
그분이 대통령으로 재임할때 전임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시작된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호황이 절정에 달하여 그의 대통령임기 중반이던 1990년 당시에는 절정에 달하여 한국현대역사상 경제가 가장 양호하던 시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성기는 그분이 대통령을 퇴임하는 날까지 계속 이어져서 그의 대통령임기기간내내 호황만 이어져서 일자리가 매우 많아서 그는 자국의 실업률에 대하여 심각하게 소식을 전달받은 적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임대통령 김영삼의 임기말년에는 경제가 매우 나빠져서 IMF사태가 와서 그는 경제망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힌 체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5분의 대통령들이 집권하지만 이 기간내내 불황만 지속됩니다.
그 결과 김대중 이후 집권하던 대통령들은 노상 자국의 실업률이 높아서 실업자가 급증해서 많은 국민들이 실업자로서 생계를 제대로 꾸리지 못하거나 걱정하면서 살아간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자국의 책임자로서 스트레스받아서 정신건강을 해치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늘 자국 경제가 대호황 속에서 불황을 경험하지 않은 노태우 前 대통령은 이로 인하여 특히 실업자들이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국의 책임자로서 스트레스받는 고통을 겪지 않던 행운의 대통령이던 것입니다.
*끝내 만년 2인자만 하시다가 대통령의 꿈을 접은 정계거물 김종필
•끝내 만년 2인자만 하시다가 대통령의 꿈을 접은 정계거물 김종필에 대한 개관
노태우 ~ 문재인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대통령 당선 당시 치른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였다가 당선되지 못하여 가장 억울하신 분은 이회창씨가 유일한 분인데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제13대 대통령선거(1988년 12월 16일) 당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셨다가 4위이자 최하위로 낙선하시던 김종필(1926년 1월 7일 ~ 2018년 6월 23일)님도 이에 해당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5·16쿠데타 당시 1인자 박정희 前 대통령에 이어 2인자로 가담하여 미국의 CIA를 모방하여 창설한 우리나라의 정보기관 중앙정보부(前 국가안전기회부 및 現 국가정보원의 전신기관)의 초대 부장(1961년 5월 20일~1963년 1월 6일)님을 하셨습니다.
이후 제3공화국, 제4공화국 및 제6공화국 1기(노태우 정부), 2기(김영삼 정부), 3기(김대중 정부), 4기(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정계거물로 활동하셨는 데 제5공화국이 집권할때는 정계진출이 금지되었고 제6공화국 5기(이명박 정부), 6기(박근혜 정부), 7기(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고령 등을 이유로 정계은퇴한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정계거물 김종필 = 한국현대정치사의 축소판인데 김영삼, 김대중 등 양김과 함께 3김으로 불리는 그분은 양김들과 달리 박정희 정부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 및 그분의 당적이던 민주공화당의 수뇌부로서 활동하시던 것이 차이인데 이로 인하여 민주화시대가 되어 정치력이 약한 것이 양김들처럼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요인이 됩니다.
사실상 대통령제하에서는 대통령의 꿈을 이룰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잘 아시는 이분은 김영삼정부 말기 당시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여 의원내각제하에서 수상을 하기 위하여 해당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 의원내각제개헌이 불발되면서 끝내 국가원수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정계거물 김종필의 박정희 정부 당시 정치경력
이후 박정희 정부가 집권하던 제3공화국(1962년 12월 17일 ~ 1972년 10월 16일)과 제4공화국(1972년 10월 17일 ~ 1980년 10월 26일) 당시 제6대 국회의원(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 충청남도 부여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 , 민주공화당), 제7대 국회의원(1967년 7월 1일 ~ 1971년 7월 25일 : 충청남도 부여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 , 민주공화당), 제8대 국회의원(1971년 7월 26일 ~ 1972년 10월 17일 : 민주공화당 전국구 1번), 제9대 국회의원(1973년 3월 12일 ~ 1976년 3월 11일 : 유신정우회), 제10대 국회의원(1979년 3월 17일 ~ 1980년 10월 26일 : 충청남도 부여군·서천군·보령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 , 민주공화당) 등 5선에 걸쳐 국회의원을 하시고 제3공화국(1962년 12월 17일 ~ 1972년 10월 16일) 말기와 제4공화국(1972년 10월 17일 ~ 1980년 10월 26일) 초기 당시이던 1971년 6월 4일 ~ 1975년 12월 18일에 제11대 국무총리도 지내시는 등 잘 나가셨습니다.
한마디로 박정희 정부의 국회이던 제6대 국회, 제7대 국회, 제8대 국회, 제9대 국회, 제10대 국회 등 5회에 걸친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하여 정계거물로서 손색이 없는 분인데 3번에 걸친 지역구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지기반이 강한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출마하여 가능하였고 1번에 걸친 전국구국회의원은 순번이 가장 앞에 부여되어서 가능하였고 1번에 걸친 유신정우회국회의원은 유신정우회에 선출되어서 가능하던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 여당만 하였고 여당은 한적이 없으며 해당 국회의원들의 임기기간은 모두 채우고 중퇴 사퇴하신 적 및 재보궐선거로 원내 입성하신 적이 없어서 정통 국회의원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5·16쿠데타 당시 2인자로서 1인자이던 박정희 정부에서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여 최대의 출세를 하셨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어서 해당 쿠데타에 가담하셔서 2인자가 되신 보람이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5·16쿠데타 당시 1인자 박정희 前 대통령의 영구집권으로 인하여 대통령 등 국가원수의 꿈은 이룰수 없다가 10·26사태 당시 그분이 암살되면서 해당 꿈을 이룰 기회가 왔으나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12·12사태를 일으켜서 집권하면서 그 꿈을 이룰 기회가 놓친 게 아니라 사라졌습니다.
•정계거물 김종필의 전두환 정부 시대 당시 정계진출 금지
전두환 前 대통령의 집권기간이던 제5공화국(1980년 10월 27일 ~ 1988년 2월 24일) 당시 국회이던 제11대 국회(1981년 4월 11일 ~ 1985년 5월 12일) 및 제12대 국회(1985년 5월 12일 ~ 1988년 5월 29일) 당시에는 국회의원 등을 하여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만약 당시에도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허용되어서 제11대 국회의원선거 및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면 합계 11선 국회의원이 될뻔도 하였는 데 이 시기에 김종필님뿐 아니라 김영삼 등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활동도 대거 금지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물론 정치활동 자체가 금지된 김종필님은 야인생활을 하시는 것이 불가피하였는 데 3김 중 유일하게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양김과 정치적성향이 상당히 다르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분의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불이익뿐 아니라 친인척들에게도 불이익이 가해져서 여섯째 동생 김종관님은 한강의 기적으로 호황이던 당시에도 일자리를 잃었고 배우자이던 신홍자님은 초등교사로서 초등학교(現 초등학교)에서 교사재직중이었는 데 아무 이유없이 해직되신 적이 있습니다.
전두환 前 대통령은 제5공화국(1980년 10월 27일 ~ 1988년 2월 24일) 출범과 함께 제12대 대통령(1981년 2월 25일 ~ 1988년 2월 24일)을 하면서 3김을 비롯한 구시대 정치인들을 정치활동 금지시켜서 숙청해 버리면서 독재를 하였는 데 1987년 6월 29일에 있던 후계자 노태우 前 대통령의 6·29선언으로 민주화시대가 열리면서 해제됩니다.
•정계거물 김종필의 노태우 정부 이후 시대 당시 민주화시대 당시 정치경력
1987년 6월 29일 당시 노태우 前 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인하여 6년만에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되면서 1987년 11월 30일에 신민주공화당을 차지하여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에 출마하지만 4위이자 최하위로서 낙선, 제13개 국회의원선거(1988년 4월 26일)에 전국구 1번으로 출마하여 당선하지만 해당 정당은 원내 제4당이자 제3야당에 불과하여 정치력이 미약합니다.
이후 지속되는 민주화시대에는 제13대 국회의원(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충청남도 부여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 신민주공화당), 제14대 국회의원(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충청남도 부여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 민주자유당), 제15대 국회의원(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1번), 제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1번) 등 4선에 걸쳐 국회의원을 하시고 제6공화국 3기이던 김대중 정부(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당시이던 1998년 3월 3일 ~ 2000년 1월 12일에 제35대 국무총리도 지내시는 등 잘 나가셨습니다.
한마디로 민주화시대의 국회이던 제13대 국회, 제14대 국회, 제15대 국회, 제16대 국회 등 4회에 걸친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하여 정계거물로서 손색이 없는 분인데 3번에 걸친 지역구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지기반이 강한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출마하여 가능하였고 2번에 걸친 전국구국회의원은 순번이 가장 앞에 부여되어서 가능하던 것입니다.
아울러 여당 당적의 국회의원은 제13대 국회의원(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당시 민주자유당(1990년 1월 22일 ~ 1992년 5월 29일), 제14대 국회의원(1992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당시 민주자유당(1992년 5월 30일 ~1995년 3월 29일), 제15대 국회의원(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1998년 2월 25일 ~ 2000년 5월 29일), 제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2004년 5월 29일 ~ 2001년 8월 23일)으로 하셨고 야당 당적의 국회의원은 제13대 국회의원(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당시 신민주공화당(1988년 5월 30일 ~ 1990년 1월 21일), 제14대 국회의원(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1995년 3월 30일 ~1992년 5월 29일), 제15대 국회의원(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1996년 5월 30일 ~ 1998년 2월 24일), 제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2001년 8월 23일 ~ 2004년 5월 29일)으로 하셔서 여당과 야당을 국회의원을 하시던 모든 국회들에서 하셨습니다.
여당 → 야당은 제13대 국회의원 당시 3당합당으로 신민주공화당 해산 후 민주자유당 입당, 제14대 국회의원 당시 민주자유당 당적의 국회의원으로 임기시작, 제15대 국회의원 당시 자유민주연합이 김대중 정부의 새정치국민회의와 연립정부 형성, 제16대 국회의원 당시 자유민주연합 당적의 국회의원으로 임기시작이었고 야당 → 여당은 제13대 국회의원 당시 야당 신민주공화당 당적으로 국회의원 당선 및 취임, 제14대 국회의원 당시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제15대 국회의원 당시 자유민주연합 당적의 국회의원으로 임기시작, 제16대 국회의원 당시 자유민주연합이 DJP 연립정부의 공조 파기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환이었습니다.
•정계거물 김종필의 국회의원 경력과 국무총리 경력
9선 국회의원으로 최다선 국회의원을 지내던 정계거물 김종필이자 2번에 걸쳐 국무총리라는 2인자를 한 정계거물 김종필이었습니다.
첫째 정계거물 김종필의 국회의원 경력입니다.
-지역구국회의원으로서 정계거물 김종필-
충청남도 부여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로는 제6대 국회의원(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민주공화당), 제7대 국회의원(1967년 7월 1일 ~ 1971년 7월 25일 , 민주공화당), 제13대 국회의원(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신민주공화당), 제14대 국회의원(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민주자유당) 등 4번, 충청남도 부여군·서천군·보령군 국회의원지역선거구로는 제10대 국회의원(1979년 3월 17일 ~ 1980년 10월 26일 : 민주공화당) 1번 등 총 5번에 걸쳐서 지역구국회의원은 모두 부여군의 국회의원지역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전국구국회의원으로서 정계거물 김종필-
제8대 국회의원(1971년 7월 26일 ~ 1972년 10월 17일) 당시 민주공화당 전국구 1번, 제15대 국회의원(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1번,
제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당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1번 등 3번에 걸친 전국구국회의원들을 모두 1번으로 하였습니다.
-유신정우회국회의원으로서 정계거물 김종필-
제9대 국회의원(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6일) 전반기이던 1973년 3월 12일 ~ 1976년 3월 11일 당시 1번에 걸쳐서 유신정우회국회의원을 하였습니다.
둘째 정계거물 김종필의 국무총리 경력입니다.
-박정희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한 정계거물 김종필-
1971년 6월 4일 ~ 1975년 12월 18일에 제11대 국무총리를 하셨는 데 당시에는 제3공화국(1962년 12월 17일 ~ 1972년 10월 16일) 말기와 제4공화국(1972년 10월 17일 ~ 1980년 10월 26일) 초기여서 해당 공화국들의 교량역할을 하셨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한 정계거물 김종필-
1998년 3월 3일 ~ 2000년 1월 12일에 제35대 국무총리를 하셨는 데 당시에는 김대중 정부(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초기여서 해당 정부의 행정수반 2인자의 시초였습니다.
전자의 경우 제16대 국회의원선거(2004년 4월 15일) 그 공직선거때부터 시작된 비례대표국회의원에 대하여 자유민주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하였다가 역대 국회의원선거 출마 전적 중 유일하게 낙선을 하여 자유민주연합은 비례대표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가운데 정계은퇴하고 후자의 경우 제13대 대통령선거(1988년 12월 16일)당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4위이자 최하위로서 낙선한 것이 유일하게 대통령선거 출마전적인데 결국 대통령에 이은 행정부의 2인자 국무총리만 보수정권이자 독재정권에서 1번, 중도정권이자 민주정권에서 1번 등 각각 2번씩 하던 것으로 만족하실 수밖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될수 없어서 의원내각제개헌론을 외치던 정계거물 김종필
김종필님은 민주화시대가 되어 자신의 사당(私黨)이던 신민주공화당 및 자유민주연합은 국회의원수가 적어서 군소정당에 불과하였어고 민주자유당에 당적을 두실때는 노태우 정부 시절 김영삼에 이은 2인자로서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민주자유당 당적으로 출마할수 없었고 김영삼 정부 시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져서 1995년 3월 30일 당시 민주자유당에서 탈당 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처럼 국회의원수가 적은 군소정당에 불과하여 정치력이 미약하였습니다.
그러자 1995년 당시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 출마하여도 당선될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1995년 9월 5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여 정계복귀 한 정치성향이 전혀 다르면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소속 정당이 국회의석수가 많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와의 연대를 추진합니다.
당연히 세상은 모두가 “김종필이 대통령제하에서는 대통령이 될수 없으니까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여 수상이 되려고 하는 것인데 국가의 정부구조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다”고들 목소리를 높이는 의견이 컸는 데 결국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 불출마하는 대가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지지하여 당선시켜서 두 번째 국무총리, 한국최초의 연립정부 형성으로 자신의 소속 정당 자유민주연합은 야당에서 여당이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김대중과의 연대 당시“김대중 대통령 임기기간 중 의원내각제 개헌”을 하고자 합의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는 데 자신의 소속 정당 자유민주연합이 김대중 대통령의 소속 정당 새정치국민회의와 연립정부를 형성한 상태에서 의원내각제 개헌을 해서 자유민주연합 총재로서 수상이 되어 대통령으로 못하던 꿈을 이루려던 것이었으나 불발되었는 데 정치 9단의 초고단자(?)답게 성사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고 현실에 맞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시던 것입니다.
김종필님이 김영삼 정부 말기 당시 의원내각제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시던 시절 어느날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자가 "5·16쿠데타 당시 먼저(김종필) 무너뜨린 의원내각제를 왜 이제 와서 죽자살자 복원하려는 가?"하는 돌발 질문에 대하여 "5·16쿠데타 당시와 지금(1990년대 중반)은 시대적 상황이 달라서 의원내각제를 5·16쿠데타 당시에 하기에 부적합하였어도 지금(1990년대 중반)은 그렇지 않다"고 IMF사태 이후 구직자들이 취업하려는 사업장의 면접관들에게 말솜씨 좋게 답변해야 취업이 잘 되는 답변을 잘 하셨는 데 당시에는 한강의 기적으로서 구직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는 데 이후 IMF사태로 인하여 불황시대가 개막하면서 정치인들처럼 면접 때 말 잘해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 데 정치인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잘해도 대통령 등이 되기는 매우 어려운 것과 같아진 것입니다.
해당 대통령선거들은 모두 제6공화국에서의 대통령선거들로서 제6공화국하 대통령의 최대 특징은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것인데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도 제6공화국하에서 치르어서 제6공화국의 8번째 대통령이 나오게 됩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나라에서 도입하는 제도로서 1988년 2월 25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고 있는 해당 헌법과 관련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시대에 대통령이 7분이나 교체되는 동안 민주주의가 완전하게 완성되어서 현재 실정에 부적합합니다.
이에 따라 개헌을 하여 대통령제의 원조인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어서 초선 현직 대통령이 4년동안 정치를 잘하면 1번은 중임하게 허용하여 8년동안 대통령하게 하고 못하면 4년만 대통령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20대 대통령(2022년 5월 10일 ~ 2027년 5월 9일)의 임기가 끝나기에는 반드시 이런 식으로 제7공화국이 되어 제6공화국보다 국리민복을 대거 추구하는 헌법조항이 대거 규정된 제7공화국을 수립시켜야 합니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하여 그때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으로부터 국민들이 최대한 많은 법적 보호를 받는 사항에 대해서도 제7공화국 헌법으로 규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규정한 헌법조항
대한민국헌법
제4장 정부
제1절 대통령
제66조
①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②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③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④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⑤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68조
①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②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73조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ㆍ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ㆍ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제74조
①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②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한다.
제75조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제76조
①대통령은 내우ㆍ외환ㆍ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ㆍ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②대통령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③대통령은 제1항과 제2항의 처분 또는 명령을 한 때에는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④제3항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이 경우 그 명령에 의하여 개정 또는 폐지되었던 법률은 그 명령이 승인을 얻지 못한 때부터 당연히 효력을 회복한다.
⑤대통령은 제3항과 제4항의 사유를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77조
①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제78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
제79조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ㆍ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사면ㆍ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80조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
제81조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제82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
제83조
대통령은 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행정각부의 장 기타 법률이 정하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제85조
전직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손혁재의 대선 길목 D-83] ‘1노3김’ 13대 대선의 추억-지역주의와 북풍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5월 9일에 퇴임하고 새로 뽑힌 제20대 대통령은 5월 10일에 취임하게 됩니다. 제13대 대통령부터 제18대 대통령까지는 12월 중순 쯤 대선을 치렀고 이듬해 2월 25일에 취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어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바람에 날짜가 바뀐 겁니다.
1987년 오늘은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뒤 첫 번째로 대통령 선거를 치른 날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통해 시민의 대통령 선출권을 박탈함으로써 제9대부터 제12대 대통령까지는 대통령이 간선으로 뽑혔습니다. 제9대부터 제11대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했고, 제12대는 선거인단에 의해 뽑혔습니다.
16년 만에 대통령을 시민이 직접 뽑을 수 있었던 건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6월항쟁은 역사의 물길을 민주주의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겪었듯 민주주의는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89.2%로 매우 높았습니다. 16년 만의 대통령 직선이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1노3김이라 불리는데 노태우 후보에 맞서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백기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도 출마했으나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며 선거 이틀 전에 사퇴했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득표율 36.6%에 그쳤음에도 당선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낮은 득표율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이끌었던 김영삼·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말미암은 어부지리였습니다.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각각 28%와 27% 득표율로 2위와 3위에 그쳤습니다.
이른바 북풍도 노태우 당선의 중요 요인입니다. 그해 11월 29일 바그다드발 서울행 KAL 858편 보잉 707기가 버마 랑군 상공에서 폭발했고, 탑승객 115명은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범인 김현희(마유미)가 대통령선거 전날 서울에 옴으로써 대선 최대변수로 작용했습니다. 노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된 겁니다.
노태우 정부는 제6공화국이라 불렸습니다. 제5공화국이 총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이라면 제6공화국은 민선군사정권입니다. 12.12 군사반란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노태우 장군이 시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군사 정부가 5년간 연장되었고, 결과적으로 민간 정부는 5년 후에야 탄생되었습니다.
1노3김이 팽팽하게 맞섰던 제13대 대선은 안타깝게도 지역주의가 선거의 주요변수로 자리잡은 선거였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 경북에서, 김영삼 후보는 부산 경남에서, 김대중 후보는 광주와 전남북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김종필 후보는 과반은 넘기지 못했지만 대전 충남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두들 후보의 출신지역입니다.
그 뒤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와 북풍이 선거전략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제14대 대선 때 일어난 초원복국집사건은 지역주의를 자극하려는 관권선거 모의였습니다. 제15대 대선 때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유리하도록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북한 측에 요청한 총풍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색깔론도 북풍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주의와 북풍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에 시민들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제13대 대선에서 이미 여성 대통령 후보가 출마하였음을 첨언합니다. 사회민주당의 홍숙자 후보입니다. 홍숙자 후보는 선거 도중 김영삼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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