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2021년은 10월 초순인 2021년 10월 1일 ~ 10일까지도 날씨가 다소 더워서 많은 분들이 하복착용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상이변은 한계가 있어서 한글날연휴(2021년 10월 9일 ~ 11일) 마지막 날이면서 2021년 10월의 두번째 월요일이 시작된 2021년 10월 11일에는 기온이 급감하여 춘추복을 착용해야 하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 출마할 제1당이자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상데로 이재명 경선후보님께서 이에 선출되셔서 선거에 있어서 이변에도 한계가 있는 데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시대 이후 대통령후보 경선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봅니다.
역시 이변은 없어서 2021년 10월 10일 당시 여당이자 원내 제1당 더불어민주당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 출마하실 후보님이 이재명님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데로 2위를 하셔서 더불어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하실 수 없게 된 이낙연 경선후보님께서 이에 불복하셔서 이의제기를 하여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힘이 어부지리로 대이익을 보게 되는 데 이낙연 경선후보님이 경선 탈락 직후 보이신 태도로 보아 후폭풍이 잔잔하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 확실시 됩니다.
첫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님의 선거소송 제기입니다.
이재명님의 대통령후보 선출에 불복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님이 법적으로 해당 선거소송을 제기하셔서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의 진행에 차질이 발생할때입니다.
둘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님의 개별출마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하여 신당 창당하거나 무소속으로서만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 출마하시는 것이 가능한데 이로 인하여 더불어민주당이 분당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 출마할 대통령후보 경선을 치른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생한 해당 사건들이 이전 대통령선거에서 이들과 반대되는 정당에서 먼저 발생한 전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제1당이자 여당이던 신한국당에서 선출되던 이회창 경선후보님의 대통령후보선출에 불복하던 2위를 기록한 이인제 경선후보가 신한국당에서 탈당하여 국민신당을 창당해서 해당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 제2당이자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에서 선출되던 이명박 경선후보님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매우 많았는 데도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는 데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서 제1당이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선출된 이재명 경선후보님도 유사합니다.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후보 경선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후보 경선에 대한 개관
흔히 대통령이 되려면 거대정당의 후보로 출마해야한다는 사실만 인지하는 일을 특히 성년자로서 정치무관심자 및 미성년자들은 흔히 연상하지만 그 이전에 넘어야 할 산을 넘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어느 국가가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경기대회에서 특정 종목을 매우 잘하면 그 국적의 관련 종목 선수들이 그 국제경기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 등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국가대표선수에 선발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만약 이 국가대표선수선발전에서 탈락시 해당 국가대표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 등 우수한 성적을 거둘수 없는 데 공직선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각 정당의 후보들이 당선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에서 해당 정당 당적의 후보로 출마하기보다 그 선거구의 해당 정당 당적의 후보 선출되기가 훨씬 어려운 것입니다.
국가대표선수선발전과 달리 그 정당의 당적을 이탈하여 다른 정당의 당적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때는 당선가능성이 훨씬 낮아지므로 사실상 의미가 없고 이렇게 하면 차기 공직선거때 이탈한 정당의 당적으로 출마할수 없거나 정치력이 약해져서 아예 출마할수도 없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제13대 대통령선거 ~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후보 경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에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4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여당이자 제1당이던 민주정의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정의당에서는 재적 대의원 수 8646명중 4324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단독 출마하여 7260표(83.97%)를 획득하여 압도적으로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정의당은 1987년 6월 10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제1야당이자 제2당이던 통일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통일민주당에서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前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의 양강 구도가 예상되었으나 김대중이 탈당하고 독자 출마를 결정하면서 김영삼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통일민주당은 1987년 11월 9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평화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평화민주당은 1987년 10월 29일 당시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에서 탈당하여 창당하던 정당으로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김대중 前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평화민주당은 1987년 11월 12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前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신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신민주공화당은 1987년 10월 30일에 창당하던 정당으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김종필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신민주공화당은 1987년 10월 30에 열린 창당대회에서 김종필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은 여당(민주정의당)의 경우 해당 정당이 창당되던 뿌리이던 12·12쿠데타 당시 2인자이던 노태우, 야당(원내정당으로서)들의 경우 당시 우리나라 정계원로이던 김영삼(통일민주당), 김대중(평화민주당), 김종필(신민주공화당) 등 4명의 후보들이 모두 경선 없이 단독으로 대통령후보가 되어 출마하였습니다.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민주자유당, 민주당, 통일국민당, 새한국당, 신정치개혁당 등 4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여당이자 제1당이던 민주자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자유당에서는 재적 대의원 수 6882명중 3442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김영삼, 이종찬 등 2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김영삼 4418표(64.2%), 이종찬 2214표(32.2%)를 획득하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자유당은 1992년 5월 19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제1야당이자 제2당이던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재적 대의원 수 2426명중 1214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김대중, 이기택 2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김대중 1413표(58.2%), 이기택 925표(38.1%)를 획득하여 김대중 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1992년 5월 26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공동대표를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통일국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통일국민당에서는 대의원 1796명 중 1738명이 참석하여 870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정주영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단독 출마하여 1727표(99.4%)를 획득하여 압도적으로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통일국민당은 1992년 5월 15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정주영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새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새한국당은 후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민주자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탈락 후 그 정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종찬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새한국당은 1992년 11월 17일에 열린 창당대회에서 이종찬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다섯째 제4야당이자 제5당이던 신정치개혁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신정치개혁당은 1992년 2월 25일 당시 박찬종이 정치신인들과 함께 정치개혁협의회를 구성하여 창당하던 정당으로 신정치개혁당을 창당한 박찬종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신정치개혁당은 1992년 6월 9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박찬종 대표최고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은 의석수가 많은 정당일수록 치르고 적은 정당일수록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실수 있는 데 최후의 승자는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민주당, 국민신당 등 5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여당이자 제1당이던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신한국당에서는 대의원 12431명 중 11544명이 참석하여 단순 최다 득표를 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김덕룡(기호 1번), 박찬종(기호 2번), 이한동(기호 3번), 최병렬(기호 4번), 이회창(기호 5번), 이수성(기호 6번), 이인제(기호 7번) 등 7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이회창(기호 5번)과 이인제(기호 7번)만 본경선에 진출하여 이회창 4955표(59.96%), 이인제 1774표(14.66%)를 획득하여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신한국당은 1997년 7월 21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제1야당이자 제2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대의원 4368명 중 4157명이 참석하여 2079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 김대중, 정대철 등 2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김대중 3223표(77.53%), 정대철 907표(21.82%)를 획득하여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새정치국민회의는 1997년 5월 19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자유민주연합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자유민주연합에서는 대의원 3881명 중 3190명이 참석하여 1596표가 찬성해야 대통령후보가 선출될수 있는 가운데김종필, 한영수 등 2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김종필 2575표(80.7%), 한영수 554표(17.4%)를 획득하여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유민주연합은 1997년 6월 24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종필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민주당(1995년)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1995년)에서는 총재 조순을 민주당(1995년)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당(1995년)은 1997년 9월 11일 전당대회에서 조순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다섯째 제4야당이자 제5당이던 국민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국민신당은 1997년 11월 4일 당시 이인제가 신한국당 대통령선거 후보경선에서 불복 후 탈당하여 창당하던 정당으로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신당은 1997년 11월 4일에 열린 창당대회에서 이인제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5개의 원내정당들 중 최종적으로 신한국당 + 민주당 = 한나라당(양당이 합당하여 출마), 새정치국민회의 + 자유민주연합 =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이 불출마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지지), 국민신당 등 3개의 원내정당들이 출마하였는 데 최후의 승자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였습니다.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국민통합21 등 3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제1당이자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최병렬, 이부영 등 3명의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들이 출마하여 이회창 17481표(68.00%), 최병렬 4694표(18.26%), 이부영 2926표(11.38%)를 획득하여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002년 4월 13일부터 5월 9일까지 개최한 국민 참여 대통령선거 경선(한국에서 두번째)에서 2002년 5월 9일 당시 이회창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여당이자 제2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는 노무현, 정동영 등 2명의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들이 출마하여 노무현 17568표(72.2%%), 정동영 6767표(27.8%)를 획득하여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3월 29일 ~ 4월 27일까지 개최한 국민 참여 대통령선거 경선(한국에서 최초)에서 2002년 4월 27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3당이자 제2야당이던 국민통합21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국민통합21에서는 정몽준을 당대표 및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통합21은 2002년 11월 5일에 열린 창당대회에서 정몽준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3개의 원내정당들 중 최종적으로 국민통합21은 새천년민주당을 지지(하지만 해당 대통령선거를 치르기 하루 전인 2002년 12월 18일 당시 철회)하고 불출마하여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등 2개의 원내정당들이 출마하였는 데 최후의 승자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의 후보였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2005년), 창조한국당 등 5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여당이자 제1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손학규(기호 1번), 신기남(기호 2번), 한명숙(기호 3번), 이해찬(기호 4번), 천정배(기호 5번), 정동영(기호 6번), 추미애(기호 7번), 유시민(기호 8번), 김두관(기호 9번) 등 9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손학규(기호 1번), 이해찬(기호 4번), 정동영(기호 6번)만 본경선에 진출하여 정동영 216984표(43.8%), 손학규 168799표(34.0%), 이해찬 110128표(22.2%)를 획득하여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9월 15일 ~ 10월 15일까지 개최한 국민 참여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2007년 10월 15일 당시 정동영 前 열린우리당 의장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제1야당이자 제2당이던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기호 1번), 원희룡(기호 2번), 박근혜(기호 3번), 홍준표(기호 4번), 고진화(기호 5번) 등 5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고진화(기호 5번)가 사퇴하고 이명박(기호 1번)과 박근혜(기호 3번)만 본경선에 진출하여 이명박 81084표(49.56%), 박근혜 78632표(48.06%)를 획득하여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007년 8월 19일에 진행한 여론조사 및 국민 참여 선거인단 투표를 통하여 2007년 8월 20일 당시 이명박 前 서울특별시장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민주당(2005년)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2005년)에서는 이인제, 김민석 등 2명의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들이 출마하여 이인제 34176표(56.4%)를, 김민석 14641표(24.2%)를 획득하여 이인제 민주당(2005년)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당(2005년)은 2007년 9월 20일 ~ 10월 16일까지 개최한 국민 참여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2007년 10월 16일 당시 이인제 국회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민주노동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서는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등 3명의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들이 출마하여 권영길 19053표(49.4%), 심상정 10064표(26.1%), 노회찬 9478표(24.6%)를 획득하여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2007년 8월 20일 ~ 9월 15일까지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투표로 경선을 진행하여 권영길 前 민주노동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다섯째 제4야당이자 제5당이던 창조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창조한국당은 2007년 10월 30일 당시 창당하던 중도정당으로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하던 김영춘 국회의원(서울특별시 광진구 갑국회의원지역선거구)이 입당하여 원내정당이 되었는 데 2007년 11월 1일 ~ 2일까지 당원 및 일반 국민을 상대로 실시된 모바일 찬반 투표를 통하여 총 투표자 수 8352명 중 94.5%인 8884명의 지지를 받은 문국현 前 유한킴벌리 대표가 대통령선거 경선후보로 추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창조한국당은 2007년 11월 1일 ~ 2일까지 당원 및 일반 국민을 상대로 실시된 모바일 찬반 투표를 통하여 2007년 11월 4일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문국현 前 유한킴벌리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이 거대정당들은 예비경선과 본경선을 모두 치르던 반면 군소정당들은 본경선만 치르던 데서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실수 있는 데 최후의 승자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였습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 4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여당이자 제1당이던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임태희(기호 1번), 박근혜(기호 2번), 김태호(기호 3번), 안상수(기호 4번), 김문수(기호 5번) 등 5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박근혜(기호 2번), 김문수(기호 5번) 등 2명만 본경선에 진출하여 박근혜 86589표(83.97%), 김문수 8955표(8.68%)를 획득하여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23일 ~ 8월 19일까지 개최한 여론조사 및 국민 참여 선거인단의 현장 투표로 치른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2012년 8월 19일 당시 박근혜 前 한나라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제1야당이자 제2당이던 민주통합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민주통합당에서는 손학규(기호 1번), 조경태(기호 2번), 문재인(기호 3번), 박준영(기호 4번), 김정길(기호 5번), 김두관(기호 6번), 김영환(기호 7번), 정세균(기호 8번) 등 8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본경선에는 정세균(기호 1번), 김두관(기호 2번), 손학규(기호 3번), 문재인(기호 4번), 박준영(기호 5번) 등 5명의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들이 진출하였는 데 박준영(기호 5번) 후보의 사퇴 후 정세균 43027표(7.0%), 김두관 87842표(14.3%),손학규 136205표(22.2%), 문재인 347183표(56.5%)를 획득하여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2012년 7월 29일 ~ 9월 16일까지 개최한 국민참여로 치른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2012년 9월 16일 당시 문재인 前 대통령비서실장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통합진보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통합진보당에서는 이정희, 민병렬 등 2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이정희 8622표(64.9%), 민병렬 4659표(35.1%)를 획득하여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2012년 10월 15 ~ 19일까지 치른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정희 前 통합진보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진보정의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진보정의당에서는 심상정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단독 출마하여 89.4%를 획득하여 압도적으로 과반수 지지율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진보정의당은 2012년 10월 20 ~ 21일까지 치른 당원 ARS찬반 투표에서 심상정 국회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3개의 원내정당들 중 최종적으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면서 불출마하여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2개의 원내정당들이 출마하였는 데 최후의 승자는 박근혜 새누리당의 후보였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원내정당으로서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서 출마하던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 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들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제1야당이자 제1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기호 1번), 최성(기호 2번), 문재인(기호 3번), 안희정(기호 4번) 등 4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이재명 347647표(21.2%), 최성 4943표(0.3%), 문재인 936419표(57.0%), 안희정 353631표(21.5%)를 획득하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3월 22일 ~ 4월 3일까지 개최한 국민참여로 치른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2017년 4월 3일 당시 문재인 前 민주통합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둘째 여당이자 제2당이던 자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에서는 이인제(기호 1번), 김관용(기호 2번), 김진태(기호 3번), 홍준표(기호 4번) 등 4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이인제 14.9%, 김관용 11.7%, 김진태 19.3%, 홍준표 54.2%를 획득하여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지지율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자유한국당은 2017년 3월 26일 ~ 3월 30일까지 진행된 현장투표 및 일반 국민여론조사(각각 50%씩 반영)를 통하여 2017년 3월 30일 당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셋째 제2야당이자 제3당이던 국민의 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국민의 당에서는 안철수(기호 1번), 박주선(기호 2번), 손학규(기호 3번) 등 3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안철수 75.1%, 박주선 6.9%, 손학규 18.7%를 획득하여 안철수 국민의 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지지율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의 당은 2017년 3월 25일 ~ 4월 4일까지 진행된 완전 국민 경선 80%, 여론조사 20%를 통하여 2017년 4월 4일 당시 안철수 前 국민의 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넷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바른정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기호 1번), 남경필(기호 2번) 등 2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유승민 36593표(62.9%), 남경필 21625표(37.1%)를 획득하여 유승민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바른정당은 2017년 3월 19일 ~ 28일까지 국민정책평가단 투표가 40%, 당원 및 대의원 투표가 30%, 여론조사가 30%씩 반영되는 경선을 실시하여 유승민 국회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다섯째 제3야당이자 제4당이던 정의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정의당에서는 심상정(기호 1번), 강상구(기호 2번) 등 2명의 대통령후보 경선 후보들이 출마하여 심상정 8209 표(80.7%), 강상구 1962표(19.3%)를 획득하여 심상정 대통령선거 경선후보가 과반수 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2017년 2월 11일 ~ 16일까지 당원총투표를 실시하여 2017년 2월 16일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하였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대하여 상당수 정당들이 여론조사로 진행하던 사실을 아실수 있는 데 최후의 승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였습니다.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후보 경선에 대한 정리
해당 정당의 총재나 당수 등 특정한 정치인의 당권이 유달리 강한 정당을 사당(私黨)이라고 하는 데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의 후보 경선만 보아도 당시 어느 원내정당이 어떠한 정치인의 사당(私黨)이었는 지 아실수 있습니다.
첫째 사당(私黨)에 해당하던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1명만 단독추대 하거나 특정한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의 지지율이 유달리 높던 정당들이 이에 대하던 정당들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에서 출마하던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4개 원내정당들이 모두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민주자유당, 민주당, 통일국민당, 새한국당 등 5개의 원내정당들이 모두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민주당(1995년), 국민신당 등 4개의 원내정당들이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국민통합21 등 3개의 원내정당들이 모두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민주당(2005년), 창조한국당 등 2개의 원내정당들이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 4개의 원내정당들이 모두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서 출마하던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 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의 원내정당들이 모두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에서 민주정의당(노태우),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에서 민주자유당(김영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서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에서 새천년민주당(노무현), 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새누리당(박근혜), 제19대 대통령선거(2017년 5월 9일)에서 출마하던 더불어민주당(문재인) 등 6개의 사당(私黨)에서 대통령을 배출하였습니다.
둘째 사당(私黨)이 아니던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을 여러 명 선출하면서 특정한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의 지지율이 유달리 높지 않던 정당들이 이에 대하던 정당들입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에서 출마하던 신한국당 등 1개의 원내정당이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등 3개의 원내정당들이 이에 해당하였습니다.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에서 출마하던 한나라당(이명박)이 유일하게 사당(私黨)아닌 정당으로 대통령을 배출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출마하던 원내정당들은 상당수가 민주화시대 초기에 몰려 있지만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정착된 2010년대에도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아실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제1야당분열 및 여당분열로 해당 원내정당들이 낙선하던 대통령선거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제1야당분열 및 여당분열로 해당 원내정당들이 낙선하던 대통령선거에 대한 개관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자를 배출할 것 같던 정당들의 분열은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와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2번에 걸쳐 있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의 분열로 이루어졌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분열로 이루어졌습니다.
덕분에 당선가능성이 높던 분열되던 정당의 후보들은 동반 낙선하고 대통령이 될 팔자도 아니던 후보들이 대신 대통령이 되는 대행운을 누렸습니다.
이미 대통령선거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정당들이 분열하였다가 동반 낙선한 전례가 있어서 추후 대통령선거에서 재현될 가능성은 낮은 편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의 공통점
해당 대통령선거 당시 이 분열이 없었다면 분열되지 않고 단일화한 후보들이 당선될수 있었습니다.
첫째 당선가능성이 높던 후보들이 분열되어 개별출마하였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 당시 통일민주당에서 김영삼, 김대중 2명 중 1명이 출마하면 당선될 수 있었으나 김대중이 분당해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여 개별출마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은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1명이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이인제가 분당해서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개별출마하였습니다.
둘째 이로 인하여 해당 후보들이 모두 동반 낙선하였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은 원래 평화민주당이 분당되기 전에 집권할 것이 유력시 되던 통일민주당이 분당된 평화민주당과 함께 동반 낙선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은 원래 국민신당이 분당되기 전에 집권할 것이 유력시 되던 한나라당이 분당된 국민신당과 함께 동반 낙선하였습니다.
셋째 이에 대하여 해당 정당지지자들의 반발이 매우 컸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민주화 정치기반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의 반발이 매우 컸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보수 정치기반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의 반발이 매우 컸습니다.
넷째 그 결과 당선가능성이 사실상 없던 후보들이 당선되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원래 당선가능성이 없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원래 당선가능성이 낮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다섯째 해당 원내정당중 국회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의 낙선 후 해산되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평화민주당이 분당하여 낙선하던 통일민주당은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함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여 해산됩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국민신당이 분당하여 낙선하던 한나라당은 2012년 2월 13일 당시 새누리당으로 개편해서 창당하여 해산됩니다.
여섯째 해당 원내정당중 국회의석수가 가장 적은 정당도 낙선 후 해산되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통일민주당에서 분당하여 창당하던 평화민주당은 1991년 4월 15일 당시 신민주연합당으로 개편해서 창당하여 해산됩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한나라당에서 분당하여 창당하던 국민신당은 1998년 9월 28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합당되어 해산됩니다.
일곱째 해당 원내정당의 후보들이 정계입문 하게 된 계기가 유사하였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동반 낙선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들은 민주화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동반 낙선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들은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여덟째 해당 원내정당의 후보들은 원래 정치적 동반자들이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동반 낙선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들은 원래 민주당(1955년), 신민당, 통일민주당 등 중도정당에 소속되어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정치적 동반자들이었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동반 낙선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들은 원래 신한국당에 소속되어 함께 보수정치를 하던 정치적 동반자들이었습니다.
아홉째 해당 원내정당이 분열하지 않았을 때 당선가능성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통일민주당에서 김영삼과 김대중 중 1명만 출마하였으면 100% 당선되었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이인제가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출마하지 않고 한나라당에서 이회창만 출마하였으면 당선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열째 해당 대통령선거 당시 관련 후보들이 성씨가 모두 같았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개별출마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들은 김씨입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개별출마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들은 이씨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인하여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인하여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라는 대통령이 될 팔자가 아닌 후보들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이 되던 행운을 누렸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과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의 차이점
해당 대통령선거 당시 이 분열에는 특히 소속 정당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많습니다.
첫째 해당 원내정당들이 출마하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분열사유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은 제1야당 통일민주당해서 당선이 유력시 하여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상대 후보를 출마시킬수 없어서 발생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은 여당 신한국당에서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였으나 아들들에 대한 병풍(兵風)으로 인한 지지율 급감으로 당선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이에 고무된 신한국당 득표율 2위의 경선 후보 이인제가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개별출마해서 발생하였습니다.
둘째 동반 낙선한 해당 원내정당들의 추후 방향이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분당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이후 우리나라 원내정당 양대산맥의 뿌리가 됩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분당한 이회창의 한나라당은 이후 우리나라 원내보수정당의 뿌리가 되지만 이인제의 국민신당은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합당되어 소멸하게 됩니다.
셋째 동반 낙선시 해당 원내정당들의 득표율이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분당한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은 633만7581표(28.0%) 및 평화민주당의 김대중은 611만3375표(27.0%)를 득표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분당한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993만5718표(38.7%) 및 국민신당의 이인제는 492만5591표(19.2%)를 득표하였습니다.
넷째 동반 낙선한 해당 원내정당들의 표차이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분당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득표율 차이는 전체 득표율에서 불과 1%입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분당한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의 득표율 차이는 전체 득표율에서 무료 19.5%입니다.
다섯째 동반 낙선한 해당 원내정당들의 여당과 합당여부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낙선하던 통일민주당은 거대정당으로서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함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여 해산되어 여당이자 제1당이 되고 평화민주당은 거대정당으로서 합당에 의하여 여당이나 제1당이 된 적이 없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낙선하던 한나라당은 거대정당으로서 합당에 의하여 여당이 된 적이 없고(그 당시 한나라당) 국민신당은 군소정당으로서 1998년 9월 28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합당되어 해산되면서 여당이자 제2당이 됩니다.
여섯째 해당 원내정당중 국회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의 낙선 후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입지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낙선하면서 평화민주당보다 국회의석수가 많던 통일민주당은 낙선 후 가장 먼저 치른 제13대 국회의원선거(1988년 4월 26일) 당시 제2당이자 제1야당이 되고 평화민주당은 제3당이자 제2야당이 되었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낙선하면서 국민신당보다 국회의석수가 많던 한나라당은 낙선 후 가장 먼저 치른 제16대 국회의원선거(2000년 4월 13일) 당시 제1당이자 제1야당이 되고 국민신당은 해당 국회의원선거를 치르기 전인 1998년 9월 28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합당되어 해산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일곱째 분열된 해당 원내정당들을 누르고 당선된 정당들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인하여 어부지리로 제1당이자 여당이던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어 집권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인하여 어부지리로 제2당이자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어 집권하였습니다.
여덟째 분열된 해당 원내정당들을 누르고 당선된 정당들의 집권시 다른 정당과의 공조여부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인하여 어부지리로 집권하던 민주정의당은 단독정부로 집권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인하여 어부지리로 집권하던 새정치국민회의는 해당 대통령선거 당시 자신들을 당선시켜 집권하게 하기 위하여 불출마하던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한국역사상 최초의 연립정부로 집권하였습니다.
아홉째 분열된 해당 원내정당들의 후보들이 추후 정치적으로 다시 합치던 사항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인하여 개별출마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들을 이후 영원히 정치적으로 결별하였습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인하여 개별출마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이후 차기 대통령선거이던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당시 이인제는 출마하지 않고 한나라당 후보로 재출마한 이회창을 거들어서 정치적으로 다시 합쳤습니다.
열째 추후 해당 원내정당 대통령 후보들이 자신의 꿈에 대한 실현입니다.
제13대 대통령선거(1987년 12월 16일) 당시 제1야당분열로 인하여 개별출마하던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는 제14대 대통령선거(1992년 12월 18일)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뒤늦게 꿈을 이루고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여 뒤늦게 꿈을 이룹니다.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 여당분열로 인하여 개별출마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후보,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후 대통령의 꿈을 접고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제17대 대통령선거(2007년 12월 19일) 당시 민주당(2005년)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 후 대통령의 꿈을 접습니다.
이 대통령선거 당시 후보들의 분열만 보아도 대통령이 될수 있는 팔자는 하늘이 정해주는 행운이라는 사실을 잘 아실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가운데 국민의 힘에서는 2021년 10월 8일 당시 본경선에 진출한 경선 후보님들이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4분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20대 대통령이 되시겠다고 감사원장 사퇴 후 국민의 힘에 입당하시던 최재형 님의 그 꿈은 사실상 좌절되어 꾸실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제15대 대통령선거(1997년 12월 18일) 당시의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님처럼 하시면 제2의 이인제로서 제21대 대통령 이후 대통령의 꿈도 완전하게 접으시게 됩니다.
따라서 계속 국민의 힘 당원으로 계시면서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국민의 힘 후보님에 대한 선거운동을 전폭 지원하시다가 제22대 국회의원선거(2024년 4월 10일)가 되어 당선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에서 출마하셔서 국회의원되시는 것이 최상의 길입니다.
또 제20대 대통령이 국민의 힘에서 당선되어 취임하면 그 대통령의 임기초반에 국무총리나 법무장관을 하시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국민의 힘에서 정치기반이 막강해져서 정계거물이 되시면 차차기 대통령선거인 제21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셔서 당선되시는 데 매우 유리해집니다.
*공직선거를 할때 출마하는 정당에서의 당내경선을 규정한 법조항
공직선거법
제57조의2(당내경선의 실시)
①정당은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하여 경선(이하 “당내경선”이라 한다)을 실시할 수 있다.
②정당이 당내경선[당내경선(여성이나 장애인 등에 대하여 당헌ㆍ당규에 따라 가산점 등을 부여하여 실시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후보자로 등재된 자(이하 “경선후보자”라 한다)를 대상으로 정당의 당헌ㆍ당규 또는 경선후보자간의 서면합의에 따라 실시한 당내경선을 대체하는 여론조사를 포함한다]을 실시하는 경우 경선후보자로서 당해 정당의 후보자로 선출되지 아니한 자는 당해 선거의 같은 선거구에서는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 다만, 후보자로 선출된 자가 사퇴ㆍ사망ㆍ피선거권 상실 또는 당적의 이탈ㆍ변경 등으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8. 4. 6.>
③「정당법」 제22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의 규정에 따라 당원이 될 수 없는 자는 당내경선의 선거인이 될 수 없다.
[본조신설 2005. 8. 4.]
정당법
제22조(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
①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는 공무원 그 밖에 그 신분을 이유로 정당가입이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 불구하고 누구든지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1. 7. 21., 2012. 1. 26., 2012. 2. 29., 2013. 12. 30., 2017. 12. 30.>
1. 「국가공무원법」 제2조(공무원의 구분) 또는 「지방공무원법」 제2조(공무원의 구분)에 규정된 공무원. 다만,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국회 부의장의 수석비서관ㆍ비서관ㆍ비서ㆍ행정보조요원, 국회 상임위원회ㆍ예산결산특별위원회ㆍ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의 행정보조요원, 국회의원의 보좌관ㆍ비서관ㆍ비서, 국회 교섭단체대표의원의 행정비서관, 국회 교섭단체의 정책연구위원ㆍ행정보조요원과 「고등교육법」 제14조(교직원의 구분)제1항ㆍ제2항에 따른 교원은 제외한다.
2. 「고등교육법」 제14조제1항ㆍ제2항에 따른 교원을 제외한 사립학교의 교원
3.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공무원의 신분을 가진 자
②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자는 당원이 될 수 없다.
국민의힘 본경선 4명 압축‥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국민의힘 본경선 4명 압축‥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입력 2021-10-08 19:43 | 수정 2021-10-08 21:22

앵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네 명으로 압축 됐습니다.
공식 순위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MBC 취재 결과 당원 투표에서 강세를 보인 윤석열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또 국민 여론 조사에서 강세였던 홍준표 후보가 2위를 차지 했고 그 뒤를 유승민 원희룡 후보가 이어 갔습니다.
국민의힘, 경선 상황 김정인 기자가 분석, 전망 합니다.
리포트
예상대로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세 후보가 2차 컷오프를 무난히 통과했고, 마지막 한 자리는 원희룡 후보의 차지였습니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1차 컷오프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다순으로 4명의 이름만 발표했고, 순위와 득표율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MBC 취재결과 당원투표 30%와 국민여론조사 70%를 합산한 종합 1위는 윤석열 후보였고, 이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 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당원 투표에서 홍준표 후보는 국민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석열/국민의힘 경선후보]
"동지 여러분의 열렬한 지지로 2차 경선도 압도적인 승리로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홍준표/국민의힘 경선후보]
"저도 솔직히 제가 이렇게 뜰 줄 몰랐습니다. 뜬 소문에 의하면 제가 1등했다고 합니다."
유승민 후보는 당원들의 지지가 결국 자신에게 모아질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유승민/국민의힘 경선후보]
"당원들께서 진짜 누구를 내세우면 이재명을 확실하게 이길 거냐를 저는 생각하실 거라고 제가 믿습니다."
치열한 4강 경쟁을 뚫은 원희룡 후보는 향후 토론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희룡/국민의힘 경선후보]
"원희룡을 국민들이 나라 일에 쓸 가치, 값어치 이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감사원장까지 중도 사퇴하며 대선판에 뛰어든 최재형 후보는 석달 만에 고배를 마셨고, '홍준표 저격수'를 자처했던 하태경 후보도 4강 문턱은 넘지 못했습니다.
총선 부정선거 주장을 반복하던 황교안 후보는 이번 경선도 조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황교안/국민의힘 경선후보]
"당 후보 경선에서도 부정선거가 있었습니다. 후보별 투표율이 조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은 모두 10번의 토론을 거쳐 다음달 5일 최종 후보를 선출합니다.
MBC뉴스 김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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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50.29%' 과반 득표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50.29%' 과반 득표
입력 2021-10-10 20:22 | 수정 2021-10-10 21:23

앵커
이재명 경기지사가 더불어민주당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이 후보는 경선에서 누적득표율 50.29%로 과반을 기록하면서 결선 투표 없이 본선행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후보는 "국민이 요구한 변화와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먼저 이학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최종 승자는 이재명 후보였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마지막 관문인 서울 경선에서 51.45%로 과반 승리를 이어갔고, 2위 이낙연 후보는 36.50%를 기록했습니다.
이낙연 후보는 24만 8천여 명이 참가한 3차 일반 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 62.37%를 득표하며 맹추격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누적 과반 득표를 저지하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11차례 지역 순회 경선과 3차례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14전 12승을 거둔 이재명 후보의 누적 득표율은 50.29%. 과반 득표로 결선 투표 없이 대선 본선으로 직행하게 됐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정권 재창출의 최고 전략은 원팀"이라며 당내 경선 후유증 수습에 나섰습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동지들이 계셔서 우리 민주당이 더 커졌습니다. 더 단단해졌습니다. 이재명 정부 창출의 동지로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막판 맹추격전에도 과반 저지에 실패한 이낙연 후보는 지지자들 앞에서 추후에 정리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낙연/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저의 정리된 마음은 정리되는 대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017년에 이어 두차례 도전 끝에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 후보는 내일 현충원 참배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게 됩니다.
MBC뉴스 이학수입니다.
영상취재: 박주영/영상편집: 송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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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클로징
뉴스데스크 클로징
입력 2021-10-10 20:49 | 수정 2021-10-10 20:49

앵커
10월인 아직도 반팔 입으시는 분 많으시죠?
내일부터는 긴팔이나 겉옷을 챙겨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요일 뉴스데스크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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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측 '무효표 처리' 문제제기‥결선투표 공식 요구
이낙연 측 '무효표 처리' 문제제기‥결선투표 공식 요구
입력 2021-10-11 19:53 | 수정 2021-10-11 22:50

앵커
그런데 이낙연 후보 측은 경선 중간에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로 빼버린 건 인정할 수 없다면서 결선 투표를 하자고 공식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사퇴한 후보의 표를 무효로 했을 때와 인정했을 때, 결선 투표로 갈지 말지가 정반대로 이어지는 건데요.
먼저, 쟁점이 뭔지 배주환 기자가 설명합니다.
리포트
이낙연 전 대표 측은 경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에 이의신청서를 냈습니다.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후보의 득표는 과반이 안 되는 만큼 결선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홍영표/이낙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당헌당규를 오독해서 잘못 적용하면 선거의 정통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쟁점은 '경선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는 특별당규 59조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당 선관위는 경선 도중 사퇴한 정세균, 김두관 후보의 표를 무효 처리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투표자 145만 9천992명 가운데 두 후보의 득표수가 빠지면서 유효투표 수는 143만 1천593표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이재명 후보 득표율은 50.29%로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이낙연 캠프는 후보자가 사퇴하기 전에 얻은 표는 '유효'로 봐야 한다면서, 이럴 경우 유효투표 수는 145만 9천735표, 이재명 후보 득표율도 49.3%로 조정돼 과반에 미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재명 후보 측은 과거 경선에서도 사퇴한 후보자의 득표를 원천무효 처리했다며 선관위 해석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박주민/이재명 캠프 총괄본부장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2012년도 대선 경선 당시에도 이런 논란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가 된 바가 있습니다."
민주당은 2002년 경선 때 중도 사퇴한 김근태, 이인제, 한화갑, 유종근 후보, 또 2007년 경선 때 중도 사퇴한 유시민 후보의 표를 모두 무효 처리한 바 있습니다.
2012년과 2017년에도 같은 규정을 유지했고, 이때는 사퇴한 후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의신청을 살펴보겠지만 다른 결론을 낼 여지가 거의 없다"는 입장인데 이 전 대표 측은 불복 논란까지 감수하며 강경한 태도여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배주환입니다.
영상취재 : 조윤기 / 영상편집 : 이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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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경선 불복'까지 가나‥이재명의 수습책은?
이낙연 '경선 불복'까지 가나‥이재명의 수습책은?
입력 2021-10-11 19:58 | 수정 2021-10-11 21:12

앵커
이렇게 이낙연 후보 측이 무효표 처리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내 '불복 논란'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이 상황이 오게 된 배경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치팀 조명아 기자와 함께 분석해보겠습니다.
이낙연 후보 측에서 결국 무효표 처리에 대해 이의 신청을 했는데요.
사실상 '경선에 불복한다'는 의미인가요?
기자
일단 이낙연 캠프 측에서는 "경선 불복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일종의 비디오 판독 요청이라는 건데요.
심판 판정이 잘못됐으니 다시 보고 정정해달라는 취지라는 겁니다.
하지만 결과가 뒤집히지 않으면 승복선언을 할거냐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는데요.
들어보시죠.
[홍영표/이낙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결과 나오면 승복하나?)
"결선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저희들이 모든 노력을 다할 겁니다. 일단은 저희들은 지도부의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 당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후보에서 사퇴한 김두관 의원은 "경선을 마치고 룰을 문제 삼는 건 분란을 낳는 일"이라고 비판했고, 정세균 전 총리도 "원칙을 지키는 일이 승리의 시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송영길 대표와 이상민 선관위원장도 경선은 끝났고 민주당 후보는 이재명이라고 이의 신청을 일축했습니다.
앵커
'경선 불복' 아니냐는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이낙연 후보 측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마지막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과반을 득표했다면 무효표 시비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3차에서 이낙연 후보가 득표율 62% 이상으로 압승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며 시비가 불거진 건데요.
이낙연 캠프 측은 대장동 의혹이 확산하면서 민심이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재 11%포인트 정도 차이가 나는데, 결선 투표로 가게 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역전 가능하다는 겁니다.
또 당장 결선 투표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대장동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다양한 정치적 선택지를 열어두고자 하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앵커
이낙연 후보 측과 힘을 모아서 공동 선대위를 꾸려야 하는 이재명 후보는 난감한 상황일 것 같은데요,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이재명 후보는 일단 무효표 처리는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면서 말을 아꼈습니다.
승복을 선언하지 않는 이낙연 후보 측에 할 말이 없진 않겠지만,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역시 축구를 예로 들었는데요.
들어보시죠.
[이재명/민주당 대선 후보]
"우리가 하나의 팀원으로서 제가 제1번 공격수 역할을 맡게 됐지만 골키퍼도 중요하고 윙도 중요하고 미드필더도 다 중요한 그게 바로 팀 경기 아닌가 싶습니다."
이재명 캠프는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도 좀 다르게 분석했는데요.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심이 바뀐 징후는 전혀 없고, 이재명 후보가 과반을 득표한 서울 권리당원 투표를 봐도 여론이 달라진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3차 투표 결과는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조직동원이나 역선택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런 갈등이 장기화되면 대선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텐데, 수습이 가능할까요?
기자
민주당 지도부가 이른바 '비디오 판독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지만, 이낙연 캠프는 여전히 승복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부정 선거'라는 말까지 꺼내면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공멸 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옵니다.
당장 야당은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으로 심판을 받았다며, 민주당 1,2위 후보를 갈라치는 공세에 나섰는데요.
문제는 이재명 후보나 당으로서도 당장은 뾰족한 수습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미 대통령 축하도 받고 현충원까지 참배한 만큼 결선 투표를 수용하기도 쉽지 않은데요.
다만 이재명 후보 측은 이낙연 전 대표가 공멸할 걸 알면서도 '경선 불복'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팀의 조명아 기자였습니다.
영상편집: 장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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